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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전도체

goldgate 2022. 7. 29. 10:32

◆ 매경 포커스 / 손현덕 주필의 사람과 현장 ◆


경기도 안성에 위치한 초전도 선재 제조업체 서남의 공장에서 문승현 서남 대표(왼쪽 셋째)가 제품 생산 공정을 들여다보고 있다. 왼쪽부터 류철희 LS전선 차장, 박승기 LS전선 에너지영업부문장(이사), 문 대표, 이헌주 서남 연구소장. [이충우 기자]

전깃줄은 어떤 재료로 만드는 게 가장 좋을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금속물질 중 최상급은 은이다. 비싸서 그렇지 은으로 전선을 만들면 전기의 손실을 가장 많이 줄일 수 있다. 그다음이 구리다. 세 번째가 금. 그래서 모든 전선은 구리로 만든다.

전선이 아무리 전기를 잘 전달해도 그 과정에서 저항이 발생한다. 전기가 흐르는 데 불순물이 나오고 충돌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발전소에서 보낸 100이란 전기는 가정에 온전하게 100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가장 손실을 적게 해서 전기를 보낼 것인가? 이 분야에서 직류를 고집했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은 교류 송전을 주장한 니콜라 테슬라에게 패했다. 직류 전기는 만들기는 쉽지만 멀리 보내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송전은 모두 교류로 한다. 초장부터 고압의 전기를 보내고 이를 중간 단계마다 전압을 낮춰 결국 가정에는 220V의 전기가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야 전선의 저항에 의한 전기 손실을 줄일 수 있다.

 

 

내로라하는 학자들이 전기의 손실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데 도전장을 냈다. 목표는 초전도(Superconductivity). 전기가 흐를 때 저항이 전혀 없는 상태다. 발전소에서 생산한 전기를 그대로 집까지 보낼 수 있는 꿈의 신기술. 낮은 전압을 사용해도 된다. 에디슨이 지하에서 웃을 일이다. 지금까지 이 분야에 최소 3개의 핵심 노벨 물리학상이 탄생했다. 물리학, 전기공학, 재료공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한번쯤은 사랑(?)에 빠질 법한 그런 기술이다.

열역학에서 나오는 엔트로피의 단위가 된 카메를링 오네스라는 네덜란드의 물리학자가 1911년 우연한 기회에 발견한 게 그 시초다. 액체헬륨을 사용해 수은의 온도를 영하 269.15도(절대온도 4도)까지 내리다 보니 전기의 저항이 완전히 없어지더라는 것. 2년 뒤 그는 노벨상을 받는다.

좀 세련된 이론이 탄생한 건 한참 뒤다. 과학자 세 사람의 이름 앞 자를 따서 만든 BCS이론이다. 오네스보다 온도가 높아도 된다. 대략 절대온도 30도. 그게 영하 243.15도다. 영하 269도와 영하 243도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한다면 그건 물리를 모르는 얘기다. 절대온도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차이만큼 어렵다는 거다. 절대온도가 각각 4도와 32도라면 정확히 8배 정도 일이 쉬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존 바딘, 리언 쿠퍼, 존 로버트 슈리퍼 세 사람은 이 연구로 1972년 공동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다. 바딘이 소속된 일리노이대학은 그를 기념하는 동판을 세워놓았다. 그는 반도체의 원조인 트랜지스터로 또 다른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천재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오네스든 BCS든 초전도 현상을 얻으려면 극저온을 달성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액체헬륨을 써야 한다. 이건 우주 공간에 떠도는 헬륨가스와는 다르다. 땅속에서 캐내야 하는 거고 매장량도 많지 않아 엄청 비싸다. 이때만 해도 초전도는 '꿈의 영역'에 있었다. 이 벽을 깬 과학자가 1986년에 나타난다. 독일의 요하네스 베드노르츠와 스위스의 카를 뮐러. 이 두 사람은 전깃줄을 구리 같은 금속으로 만들지 않고 도자기 원료인 세라믹 산화물을 썼다. 상식의 파괴다. 그랬더니 BCS이론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온도에서 초전도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논문 발표 후 1년 만에 노벨상을 받게 됐다는 사실 하나로 얼마나 대단한 발견인지를 입증한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어느 정도 온도냐 하면 그게 영하 196도인데 절대온도로는 77K다. 물리학에선 고온(高溫)에 속한다. 액체헬륨이 아니라 액체질소를 쓰면 된다. 질소는 싸다. 대기의 78%가 질소다. 가격 차이는 대략 200분의 1.

1987년 3월 18일은 물리학에 있어서는 역사적 날이다. 뉴욕 힐튼호텔에서 '고온 초전도' 현상을 주제로 한 학술대회가 열렸다. 뉴욕타임스가 이 행사를 '물리학의 우드스톡 축제'라고 썼다. 토론은 새벽 4시까지 이어졌고 행사장에 청중이 넘쳐 2000명이나 밖에 서서 들어야 했던 세미나였다. 다음날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이 특별성명을 냈다. "이제 세계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획기적인 기술의 시대에 진입하게 됐다"고.

일단 학문적 드라마는 여기까지. 이제부터는 산업적 드라마가 펼쳐질 차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산업적 드라마는 완성되지 않았고, 아주 작은 성공을 거두는 데도 무려 30년을 매달려야 했다.

1990년대부터 초전도에 대한 폭풍 도전이 시작된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이 비즈니스에 뛰어들었다.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일단 산화세라믹으로 길게 전선을 만들고 그 전선을 액화질소로 싸야 한다. 거대한 냉장고 속에 전깃줄을 넣는 원리다. 전문용어를 쓰면 전깃줄은 선재(wire)고 그걸 담은 냉장고 전체가 케이블이 되는 것이다. 통상 지름이 15㎝ 정도의 원통 모양이다. 그래야 전력회사가 설치하는 지름 20㎝ 되는 지하 관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유일하게 초전도를 연구한 김정구 교수는 베드노르츠-뮐러 논문이 발표된 직후 바로 이 분야 연구에 착수한다. 이때 대학원생으로 받은 사람이 지금 서남 대표로 있는 문승현 씨다. 1994년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당시 금성중앙연구소에 입사해 초전도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연구한다. 그러던 차에 초전도를 이용한 전력시스템 구축 가능성을 타진한 LS전선 측과 조우하게 된다. 2001년 기초과학기술 육성정책에 초전도 분야가 들어가면서부터다. 그게 'DAPAS'라는 차세대 초전도 응용기술개발 사업이다. 다른 나라보다 10년 정도 늦게 시작한 도전이었다.

문 대표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나라에도 초전도전선 회사가 있어야겠다는 사명감이 절반, 학문적으로 노벨상은 못 받았지만 그걸 토대로 산업에 있어서는 노벨상을 받아보겠다는 의지가 절반. 그렇게 창업을 결심했습니다. 그게 2004년의 일입니다." 경기도 안양에 공장을 세웠다가 2년도 채 안 돼 쫓겨나는 불운을 겪는 등 숱한 고난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가 아무리 좋은 선재(wire)를 만들어도 전선(cable)회사가 사줘야 한다. 선재는 중간재이고 전선은 완제품이다. 또 그 전선을 한국전력의 송전시스템에 깔아야 한다. 상대적으로 값싼 구리로 전선을 만들 수 있는데 굳이 비싸고 성능도 검증 안 된 초전도 선재를 사줄 전선 회사는 없다. 또 초전도전선이 만들어졌다 한들 한전에서 예산이 없다. 안정성이 없다며 퇴짜를 놓으면 무용지물이다. 초전도 전력케이블의 생태계가 그렇다.

일단 1차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수명, 성능 등을 테스트하는 단계를 거친다. 전북 고창에 있는 전력시험센터에서 그 일을 한다. 그리고 2차로 실제 전기계통에 얹어 상용화할 수 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실증 단계를 통과해야 한다. 적어도 사계절은 다 지나봐야 한다. 그러고 나서 3단계. 상용화를 하게 되는 것이다.

2001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는 숱한 고비를 맞았지만 초전도에 대한 신념으로 똘똘 뭉친 전사들이 있었기에 중단 위기를 극복하고 진도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그 중심에 문 대표가 있었다. 그의 초전도 동반자라고 할 수 있는 이헌주 서남 연구소장. 그는 "문 대표의 고집과 배짱에 반했다"고 말한다.

LS전선과 한국전력이란 우군도 그를 믿고 밀어줬다. LS전선의 박승기 에너지영업부문장(이사)과 류철휘 차장. 특히 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LS에 입사한 류 차장은 젊음과 시간을 모두 초전도에 바쳤다. 한전에도 초전도를 밀어붙인 역전의 용사들이 있다. 현재는 삼성전자 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원영진 계통계획처장은 초전도 사업의 산증인이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이철휴 처장.

취재에 들어가자 이 처장이 번개 저녁 모임을 만들었다. 지난 주말 시내 모처에서 오랜만에 회동했다. 학계에서 초전도 사업을 전폭 지원한 박민원 창원대 전기공학과 교수도 합류했다. 이들이 회식할 때 하는 건배사가 독특하다. '쿨하게/저항 없이'. 초전도를 하려면 엄청난 저온으로 냉각을 해야 하니 '쿨하게'이고 그러면 저항이 없어지니 '저항 없이'라고 화답한다.

LS전선과 한국전력의 최고경영자들이 처음부터 초전도에 매력을 느끼진 않았다. 비용이 워낙 많이 들어가는 데다 기술이 제대로 시연될지도 미지수였다. 그러나 불가능한 꿈을 꾸고 안 가본 길을 가고자 하는 그들의 도전정신에 마음을 열게 된다.

2014년 제주도 한림읍에 위치한 금악 초전도 전력설비 준공식이 있었다. 한전과 LS가 주도한 스마트그리드 실증단지가 위치한 곳이다. 이 자리에 조환익 한전 사장이 참석했다. 그는 "초전도는 과학자들로 하여금 몸을 달게 하는 보물섬 같은 존재로 아주 영리하게도 그 정체를 한꺼번에 드러내지 않고 1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기술"이라며 "그걸 우리나라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실제 전기계통에 적용한 나라가 됐다"고 약간은 흥분된 목소리로 축사를 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구자열 당시 LS그룹 회장이 이곳을 불쑥 방문한다. 그는 직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케이블로는 세계 3등이다. 1등 하는 건 없지 않으냐. 초전도는 한번 1등 해보자. 세계 최초로 전선 만들고, 상용화하고 그래서 해외에서도 수주를 따내 국가 경제 발전에 기여해보자"고. 구 회장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쫓아가는 연구만 해왔는데 이제 남들이 못 하는 것도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라며 "그게 퍼스트무버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그 말이 초전도 전사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상업화에 성공한다. 조환익 사장이 길을 닦고 김종갑 사장 때 완성됐다. 2019년 11월의 일이며 흥덕변전소와 신갈을 잇는 1㎞ 구간에 깔았다. 짧은 거리에 전선을 놓은 것이지만 2년간의 시간이 걸린 대공사였다.


2015년 당시 한전 `송변전 신기술 현장 적용을 위한 태스크포스` 기안지. 조환익 사장이 결재한 후 그 밑에 `속도감 있게 추진`이라고 메모했다.

당시 한전에 계통계획처장으로 있던 인물이 원 고문이다. 그는 2015년 1월 조 사장에게 첫 보고를 한다. 송변전 신기술 현장 적용을 위한 태스크포스 추진안이었다. 초전도 송전이 포함돼 있었다. 조 사장이 "열심히 해봐"라고 격려를 했다. 원 고문은 그 정도로 일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조 사장에게 힘 좀 실어달라고 하자 조 사장은 기안지에 직접 친필로 썼다. '속도감 있게 추진'이라고. 원 고문은 이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었다. 초전도의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였다. 2011년 경기도 이천에 실증운전을 성공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그건 변전소 안에서만 전선을 돌리는 것이었고, 이건 변전소와 변전소를 잇는 문제였다. 이천은 세계 두 번째고 이건 세계 최초였다. 이천이 갓난아기라면 흥덕~신갈 초전도는 성인이었다. 한전의 이 처장은 "초전도 기술은 3가지 요소로 우위를 결정하는데 그게 전압, 용량, 거리"라며 "이 프로젝트로 한국은 세계 1등이 됐다"고 말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한국이 세계 최초 초전도 상용국가임을 인정했다.

이 일이 있고 한국의 초전도 기술은 한 단계 더 점프한다. 그게 플랫폼 실증사업이다. 도심에 기존 변전소의 10분의 1 규모의 소규모 스테이션을 설치한 뒤 외곽의 변전소와 초전도 전선을 지하로 연결하는 것이다. 그걸 지난달 경기도 파주시 선유변전소에서 착공식을 거행했다. 준공 목표는 내년 말.

이런 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서남-LS전선-한국전력으로 구성된 초전도 삼각편대가 20년간 흐트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민원 교수는 "초전도 생태계를 구성하는 세 기업의 신뢰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모범사례"라며 이들 혁신리더의 열정과 집념에 찬사를 보낸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이 있다. 다름 아닌 한전의 적자. 박 교수는 "한전 경영이 어려워지면 투자를 멈추게 되고 그러다 보면 힘들게 구축해왔던 에너지 생태계가 붕괴될지 모른다"며 "초전도 송전기술에 대한 이들의 노력을 여기서 멈추게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저녁을 같이한 이 처장에게 농담조로 던지는 "한전 좀 잘하세요"라는 말에 뼈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