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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몰고온 또 다른 공포..밤가시

goldgate 2019. 9. 30. 09:47

 

 

               

[경향신문] ㆍ‘풀가시’도 무서워…쐐기풀류 가시털에도 독성 물질, 돼지풀 등 ‘가을 꽃가루’도 복병

주변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를 끼고 있는 경기 김포시의 한 야산에는 지난주 선선한 초가을 바람을 맞으며 산책을 즐기는 주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한층 파래진 하늘을 배경으로 숲속에선 연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 왔다.

역대 강풍 5위 ‘링링’ 지난 뒤

동네 야산 밤송이 후드득…

등산객들 무심코 앉거나 짚었다가

밤가시에 찔리는 사고 늘어날 우려

야산의 오솔길 양옆에는 밤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한자리에서 수십 년은 자랐을 법한 밤나무들의 키는 족히 7~8m를 넘었다. 밤나무 아래에는 수없이 많은 밤송이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대부분 채 여물지 않았다. 이달 초 한반도를 강타했던 태풍 링링에서 비롯된 강풍으로 예년보다 일찍 땅에 떨어진 것들이다.

태풍 링링이 지난 7일 만든 최대풍속은 초속 54.4m로 역대 강풍 순위에서 5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태풍이 지나간 직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아예 가지째 꺾여 바닥에 나뒹구는 밤송이들을 찍어 올린 사진들이 수없이 올라왔다. 예년이라면 9월부터 기다란 작대기로 밤나무 가지를 때리며 밤송이를 훑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럴 일이 현격히 줄어든 셈이다. 밤 농가에선 10년 만에 이런 흉작은 처음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문제는 때 이르게 낙과한 밤송이들이 초가을 산행의 복병이 됐다는 점이다. 바짝 말라 갈색으로 변한 밤송이들이 숲속이나 숲에 인접한 도시 공원에 즐비하게 깔리면서 등산이나 나들이 때 무심코 앉거나 손을 짚었다 밤가시에 찔리는 일이 생기게 됐다는 얘기다. 예년이라면 땅바닥에 널린 밤송이는 10월 중순에 흔하게 볼 수 있었지만 올해는 그 시기가 태풍 링링의 강풍 탓에 대폭 당겨진 것이다. 게다가 밤은 배나 사과처럼 농장이 아닌 산속에서 자생하는 일도 많아 따로 수거하지 않는 경우가 잦기 때문에 더 주의가 필요하다.

 

박영선 한림대성심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 교수는 “날카로운 밤가시가 피부에 상처를 내면 피부 표면에 있던 포도상구균이나 사슬알균이 피부 깊숙이 침투하여 염증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노약자나 환자처럼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밤에 찔려 상처가 난 상태를 방치하면 처음엔 상처 주변에서 열감이 생기고 욱신거리다가 나중엔 온몸에서 열이 나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보이는 가시만 빼면 염증 악화…

민간요법 믿지 말고 병원 가봐야

그럼 밤가시에 찔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확실한 대응법은 병원에 가는 것이다. 집에서 대강 눈에 보이는 가시만 뽑고 고통을 참으며 염증이 악화되는 상황을 방치하는 게 가장 좋지 않은 선택이다. 인터넷에서는 다양한 ‘민간요법’이 거론된다. 바나나 껍질을 가시가 박힌 부위에 붙인 뒤 반창고로 둘둘 말아 놓으라거나 부추를 곱게 빻아 발라주면 가시가 피부 밖으로 밀려 나온다는 얘기를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모두 검증되지 않은 방법이다. 박 교수는 “만간요법에 쓰이는 물질에 묻은 세균 때문에 오히려 감염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환삼덩굴

가을 산행의 복병은 또 있다. 바로 꽃가루다. 보통 꽃가루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은 대개 봄으로 알려져 있지만 여름이 지난 뒤 날씨가 선선해지는 9월과 10월에 알레르기를 본격적으로 유발하는 식물도 있다. 대표적인 게 환삼덩굴이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유독 기승을 부린다.

돼지풀
단풍잎돼지풀

돼지풀도 꽃가루의 주범이다. 높이는 1m에 이르고 가지가 유난히 많이 갈라지는 게 특징이다. 잎은 쑥잎과 비슷하다. 단풍잎돼지풀도 강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데 높이는 돼지풀보다 훨씬 큰 1.5~4m까지 자란다.

이렇게 가을철에 꽃가루가 날리는 식물을 만나면 가급적 피해 가는 게 바람직하다. 일부러 발로 차거나 줄기를 흔드는 일은 금물이다. 풀이 가득한 숲속을 헤치고 가는 일을 최대한 줄이는 게 바람직하고, 지정된 탐방로를 이용해야 한다. 소순구 국립공원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꽃가루는 날씨가 맑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쉽게 날리게 된다”며 “요즘 같은 9월과 10월은 꽃가루가 확산하기에 좋은 시기이기 때문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애기쐐기풀

이 밖에 숲속 습한 곳에서 자라는 쐐기풀류도 주의해야 한다. 몸 전체에 돋아난 작은 가시털이 문제인데, 무심코 만졌다간 피부에 큰 고통을 느끼게 된다. 가시털에 독성 물질 ‘포름산’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연하게라도 스치지 않도록 긴 소매옷을 챙겨가는 게 상책이다.

산에서 만나는 버섯은 아예 손을 안 대는 게 좋다. 식용 버섯과 비슷하게 생긴 개나리광대버섯, 화경 버섯 등은 맹독을 갖고 있다. 이를 먹었을 경우 몸에 이상을 느껴도 산행 중이라면 하산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인해 병원에 재빨리 가기 어려울 수 있다. 괜한 호기심 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