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산

181103 거창수승대,무주 덕유산의 단풍

goldgate 2018. 11. 8. 16:37


부곡온천[온천각]





거창 휴게소 [사과전망대]




거창시내 사과원예농협


 

 거창 [수승대]


 

수승대

수승대는 삼국시대 때 백제와 신라가 대립할 무렵 백제에서 신라로 가는 사신을 전별하던 곳으로 처음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을 근심하였다 해서 근심 수(愁), 보낼 송(送)자를 써서 수송대(愁送臺)라 하였다. 수송대라 함은 속세의 근심 걱정을 잊을 만큼 승경이 빼어난 곳이란 뜻으로 불교의 이름에 비유되기도 한다

그 후 조선 중종 때 요수 신권(樂水 愼權)선생이 은거하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이곳에 건립하고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대의 모양이 거북과 같다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경내를 구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지금의 이름은 1543년에 퇴계 이황(退溪 李滉)선생이 안의현 삼동을 유람차 왔다가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그 내력을 듣고 급한 정무로 환정하면서 이곳에 오지는 못하고 이름이 아름답지 못하다며 음이 같은 수승대(搜勝臺)라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내니 요수 신권선생이 대의 면에다 그 싯귀를 새겼다.

수승이라 대 이름 새로 바꾸니

봄 맞은 경치는 더욱 좋으리다.

먼 숲 꽃망울은 터져 오르는데

그늘진 골짜기엔 봄눈이 희끗희끗

좋은 경치 좋은 사람 찾지를 못해

가슴속에 회포만 쌓이는구려.

뒷날 한 동이 술을 안고 가

큰 붓 잡아 구름 벼랑에 시를 쓰리다.

그 시를 받아든 신권은 다음과 같은 화답을 보냈다.

자연은 온갖 빛을 더해 가는데

대의 이름 아름답게 지어주시니

좋은 날 맞아서 술동이 앞에 두고

구름 같은 근심은 붓으로 묻읍시다.

깊은 마음 귀한 가르침 보배로운데

서로 떨어져 그리움만 한스러우니

속세에 흔들리며 좇지 못하고

홀로 벼랑 끝 늙은 소나무에 기대봅니다.

거북바위인 암구대에는 이곳을 찾았던 선비들의 이름이 빼곡히 들어차 있으며, 퇴계 이황의 시 옆에 새겨진 시는 거창 지방의 선비였던 갈천(葛川) 임훈의 시다.

강 언덕에 가득한 꽃, 술동이에 가득한 술

소맷자락 이어질 듯 흥에 취한 사람들

저무는 봄빛 밟고 자네 떠난다니

가는 봄의 아쉬움, 그대 보내는 시름에 비길까

위의 싯귀 세 수만 보아도 이곳이 얼마나 승경인지를 말해 주는 듯 하다.​

경내에는 구연서원(龜淵書院) 사우(祠宇) 내삼문(內三門) 관수루(觀水樓) 전사청(典祠廳) 요수정(樂水亭) 함양제(涵養齊) 정려(旌閭) 산고수장비(山高水長碑)와 유적비(遺蹟碑) 암구대(岩龜臺) 등이 있는데 이는 유림과 거창신씨 요수종중에서 공동 관리하고 있으며, 솔숲과 물과 바위가 어울려 경치가 빼어나고 또한 자고암과 주변에는 고란초를 비롯한 희귀식물들이 자생하고 있다.

이 부근의 황산마을은 모두가 한옥민박집 허가를 내어 민박집을 운영하는데

연중 사람들로 붐빈다 한다.

비가 와서 물이 불어 수승대의 진면묵목 본다는 곳을 둘러서 가야했다.

관수루의 기둥 주춧돌등의 자연미는 정말 아름다운 우리 민족만의 미세계이다.

울퉁불틍 멋대로 생긴 돌 위에 적당한 나무를 얹어 구조물을 올린 선조들의 지혜는

그 어느 민족도 따를 수 없으리라.​



 











 





 



 
















 




 

수승대 [거북바위]



 





거북바위














 


덕유산 [무주구천동]










 






































무주 펜션 마을 식당 [우리마을] 저녁,아침 두끼를 먹은 좋은식당


간판뒤로 보이는 [구천동펜션모텔]에서 1박



 

리죠트 콘도라 입장 시간에 여유가 있어 방문한 [라제통문]









 







관광 곤도라





 






















 

덕유산[향적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