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령-조령삼관문 밧줄타기 55개소
2010년 6월 12일 산행계획
장소 | 특기사항 | 예정(분) | 실소요(분) | 시각 | 비고 |
집 | 04:20 | ||||
이화령 | 10:50 | ||||
759넘어공터 | 30 | ||||
조령샘 | 사진흔들림 | 55 | 40 | 11:30 | |
조령산 | 25 | 30 | 12:00 | 점심 | |
889 | 신선암봉 | 30 | 105 | 13:45 | 밧줄로 어려움 |
937H넘어안부 | 위험지대 | 40 | 위험구간 | ||
H넘어두번째봉 | 40 | 125 | 15:50 | 밧줄로 어려움 | |
삼거리 757넘어 H |
밧줄설치 | 45 | 80 | 17:10 | 위험구간 |
조령 | 25 | 30 | 17:40 | ||
290 | 410 |
※밧줄설치구간은 소개 책자보다 2배로 잡아야함을 깨달음
연수원 예약은 5월28일 12시, 시간 맞추어 인터넷에 들어갔으나 실패 했다.
여전히 대기자에 올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6월5일은 수호 휴가라 한주일 미루고 12일과 26일로 날을 잡았으나 금새
동이 나고 대기자라니...
게다가 남아공 월드컵 예선전 첫 경기가 12일 저녁 8시 반에 그리스와 있다.
전력 확보도 있고 약간은 망설여지지만 정한 날짜에 다시 대간에 오르기로 한다.
코스를 연구해 보니 아침 8시 이전에만 입산 한다면 조령을 거쳐 하늘재 까지 갈만한 코스여서 아내와 새벽 4시에 나서자고 약속하고 입소 승인에 주력하여 결국 입소 승인을 받아냈다.
11일 저녁 산행 준비를 마치고 아내가 미리 냉장고에 준비한 금정산막걸리 한 병을 나누어 먹는다.
생탁에 너무 길들여진 탓인지 시큼한 맛에 별로 댕기지 않는다.
일찍 자리에 눕고 잠을 청한다.
3시반경 아내와 난 눈을 뜨고 출행 준비를 한다.
4시20분경 우리는 차를 몰고 나온다.
밤새운 아이들이 거리에 어슬렁거린다.
10대 남자아이들, 그리고 20대 남녀들.....
뭐하면서 밤을 새우고 어슬렁거리는지??/
경주를 지나고 영천 분기점을 지나 서쪽으로 쭉 뻗은 고속도로를 달리니 자동차 뒤쪽에서 커다란 붉은 해가 구름위로 얼굴을 내민다.
사이드 밀러로 보니 장관이다.
아내에게 이 광경을 보기를 권했으나 귀찮아한다.


(비오는 칠곡 휴게소)

옆에서 졸고 있는 아내를 칠곡 휴게소에 차를 대면서 깨우니 차창에는 제법 비가 때린다.
전국적으로 비가 조금 오는 것으로 예보 되어 있으나 산행 지역인 문경은 아침 6시경 잠간 내리다 16시경에 1~4 미리 정도라고하나 지금의 날씨로 봐서는 산행이 가능할지 의문이 든다.
저번처럼 산행 마치면 비가 내릴 거라고 아내를 안심 시켜보나 역시 걱정이 된다.
빨리 갈 필요가 없다며 느직이 식사를 마치고 아내는 화장실 사용에 여념이 없다.
그러나 칠곡을 지나고 김천 상주를 거쳐 가는데 그곳은 비가 없다.
이정도면 산행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잠시 문경에 다다르니 비는 또 떨어진다.
비가 오면 바위와 밧줄이 많은 이화령-조령 구간은 뒤로 돌리고 조령- 하늘재 구간으로 가면 된다고 작심하고 바로 조령으로 올라간다.



(조령제3관문)

마지막 식당까지 차를 끌고 올라가 주차시키려니 정해진 주차선에다 대라며 주인이 이야기 하며 더 올라 가면 안 된단다.
그런대 차가 3대쯤 통행금지 말목이 해제된 곳을 넘어 더 올라간다.
우리도 따라서 더 올라가 보니 그 내들은 등산인이 아니고 무슨 작업을 하러온 사람들인 것 같다.
한 여자와 남자 5~6명과 손에는 낫과 도구들 밧줄을 둘러멘 사람도 보인다.
그쯤 적당한 곳에 차를 안전하게 주차한 후 다시 갈까 말까 망설인다.
여기서 가는 구간은 별로 험하지도 않고 거리도 짧아 별 무리 없으니 오르자고 결정하고 삼관문을 통과 하면서 아내는 화장실을 찾는다. 문경쪽에 있는 상점에 배낭을 놓고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는 기다리는 곳의 천막에 빗줄기가 떨어지니 그 소리가 요란하다고 큰비라며 그만 포기 하잔다.
그러자며 다시 천막을 나오는데 빗소리가 사그라드니 별것 아니네 하며 한번 올라가 보잔다.
그러라며 성벽 위 군막터를 돌아서는데 아내는 또다시 오늘은 포기하고 문경 봉암사나 돌아보고 목욕이나 하면서 하루를 보내잔다.
나도 동의하고 그러면 여기 까지 왔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돌아 갈 수는 없고 내일이면 비가 개일 테니 아침 일찍 연수원을 나와 등산 후 귀가 하자며 우린 주저 없이 봉암사로 향한다.


한 시간여 거리 희양산 뒷골짜기 꽤 먼 거리다.
아내는 사시(巳時)기도 시간이 되겠다며 기대한다.
그러나 왠 일인가?
절 앞에 경비원이 우리를 말린다.
여기는 일반인이 기도하는 절이 아니란다. 돌아가란다.
하는 수 없이 돌아서 내려오면서 보니 곳곳에 현수막이 처져있다.
등산을 금지한다는 그리고 원망하지 말고 부디 좋은 마음으로 돌아가시라고...
그러고 보니 이 절은 사월 초파일만 출입할 수 있다고 어디에 소개 되어 있는데 나는 산길만 그런 줄 알았지 아예 절 입구를 통제 한다는건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다.
아! 일반인이 출입할 수 없는 절도 있구나...
그런데 마을에는 민박 하는 곳도 있으니 이곳의 사정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이젠 뭘 하나....
갑자기 하루 종일 놀기가 걱정이다.
돌아오다 보니 비가 거의 멈추는 듯싶어 이번에 이화령으로 올라가본다.
마침 등산관광 버스가 한 무리의 사람을 풀어놓는다.
에잇!! 우리도 올라가자.
아내는 또 졸다 이리로 오는 줄 알았으면 말릴 건데 모르는 사이에 이리로 왔다고 온갖 책임은 내가 지라고 하면서도 배낭을 들춰 멘다...
하루를 빈둥빈둥 노는 게 더 힘들어 그냥 한번 올라 가보자 비가 많이 오면 내려오면 되지...
이때가 10시 50분...
들머리를 찾아드니 오미자길이라며 쇠파이프로 비니하우스 구조로 만들어 놓은 곳이 잇는데 이곳 문경이 오미자가 많이 나는 모양이다.
막걸리도 오미자막걸리가 있어 지난번에도 사고 오늘도 집에 갈 때 사려고 마음먹는다.
길은 마루금을 오르지 않고 9부 능선쯤으로 나있다.
조금진행하려니 아내가 이곳에 너덜지대가 있다며 인터넷에서 보았단다.
이젠 아내도 인터넷에서 산행기를 꼼꼼히 읽는 습관이 붙었다.
그래야 길이 보이고 여러 상황을 예견 하면서 산행을 즐길 수 있다며..
그럼 물론이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까.
정말 너덜지대가 나타나 사진을 찍었는데 흔들려 지워버렸다.
안개비가 계속 내린다.
옷이 너무 젖으면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울뿐더러 산행을 계속 할 수 없다고 생각되어 가지고 간 판쵸 우의를 입는다.
늘 비올 땐 입어 보지만 갑갑하기 그지없다.
오늘은 해도 들지 않아 모자를 쓰지 않기로 한다.
그렇지만 아내는 작년에 산 사슴사냥 모자를 잘 쓰고 있다.
조령샘에 도착하여 아내의 사진을 찍으려니 그냥 내닫는다.
스냅으로 찍어보나 흔들려 지워버린다.

능선에 올라 조령산으로 진행 하다 보니 헬기장이 보인다.
아내는 이런 걸 찍어야 한다며 나를 부른다.
산에 웬 자동차 타이어로 둑을 쌓아 놓았다며..
글쎄 이걸 여기가지 끌고 온 이유가 무얼까?
돌보다 구하기 쉬웠을까?
군인들 실력이겠지 헬기로 날라 온 것이겠지...

벌써 관광버스 토요산악회 산행팀은 한사람 낙오자가 생겼는지 내려 갈 길을 찾아 달라고 워키토기로 앞뒤로 연락 한다.
여자한분이 포기한 모양이다.
여기서는 정말 곤란하다 혼자 남겨두고 갈수도 없고 또 같이 가자니 갈 길이 멀고 가이드하는 사람 곤란 하겠네...
맞은편에서 한 팀이 넘어오자 아내는 조령에서 오느냐고 묻는다.
아니란다.
그러자 그 소리를 들은 토요산악회 산행 가이드가 아무리 빨리 와도 조령에서 오는 사람이 아니란다.
그쪽은 바위가 많고 밧줄 타는 곳이 많아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여기서 아내는 뭔가 또 착각을 한다.
봐라 아침에 그리로 안가길 잘했지...
아침에 포기한 구간은 이쪽으로 오는 코스가 아니라 조령에서 하늘재로 가는 코스였다고 설명하는데 정말 힘들다.



별 무리 없이 조령산에 도착!
히말라야에 잠든 산악인 고 지현욱님의 추모표지목이 있다.
지현옥은 오은선, 고미영 보다 앞선 한국의 여성 1세대 산악인이었다. 1988년 북미 매킨리를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등정했고, 1993년 한국의 에베레스트 원정 대장을 맡아 역시 여성 최초로 정상에 올랐지만 1994년 4월 안나푸르나 등정 후 하산 도중 실종됐다.
여성등반가로서 선구자적 인물이기도 했지만 산악인으로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깨뜨린 인물이기도 하다. 지현옥은 그 심경을 다음과 같이 털어 놨다.
"에베레스트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시험무대였다. 온 몸을 갈기갈기 찢을 것 같던 육체적 고통을 첫 원정에서 체험했다면 에베레스트에서는 넘을 수 없는 편견을 넘어가야만 했다.
여성 등반가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앞에서 좌절의 고통과 서러움을 이겨내고서야 에베레스트로 가는 길은 열렸다. 그런 사회적 냉소와 질시에 비하면 시체가 나뒹구는 에베레스트 사우스콜의 죽음의 공기도 견딜만했다.
여자끼리 만의 오기로 뭉쳐진 팀을 이끌었고, 나는 그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견뎌내게 하는데 성공했다."
얼마나 마음의 상처가 깊었을까.
얼마나 자신과 함께 했던 대원들이 자랑스러웠을까.
판쵸를 벗고 점심을 먹는다.
칠곡 휴게소의 밥 두 그릇 쌀때는 많아 보이더니 금새 뚝딱 해 치워 버렸다.
산에서는 식욕이 넘친다.
아내는 두 남자(나와 아들)가 산에 가면 밥을 잘 먹에 그때부터 산에 따라 다닌다며 옛날을 회상한다.
사실 아내는 결혼전에 문장대에 올라 가본 것이 산의 전부이고 제일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정도 이고 산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와 같이 살면서 아이들과 산행을 시작하고 이젠 백두대간에 달라붙은 대단한 산꾼이 된 셈이다.



(서원대 산악부에서 설치한 추모목)

앞으로 가야할 대간을 바라본다.
저 앞의 봉우리가 신선암봉 그리고 육중한 바위 능선 어디로 어떻게 올라 가는지 궁금하기도 하려니와 암봉을 오르내리는 밧줄이 은근히 걱정된다.


약간 오른쪽으로 조망한다.
가운데 우뚝 솟은 암봉은 다음 구간인 부봉(釜峰) 이고 그 오른쪽이 대간에서 벗어난 주흘산 영봉인가???



여기서 부터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 하고는 판이하게 차이가 난다.
곳곳에 밧줄 그리고 암벽 이제 비는 멈추었지만 아내는 오늘 산행 하는것이 아닌데 하며 몇 번이고 말리지 못함을 후회 한다.
그러나 기왕 지나야 할 길 차근차근 가자며 한발 한발 내딛는다.
사람이 밀려 시간은 지체 되지만 오늘 코스로는 나머지 시간으로 충분 하다고 판단된다.
자꾸만 느려지고 아내는 다시는 안 온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나도 힘들고 어려운데 아내는 얼마나 어려 울까?
동행인의 도움을 받으며 계속 전진한다.



(밧줄타기는 계속이어진다)

(슬랩 구간도 있다)



힘들어 하는 아내


정말 멋진 산이 우리를 반긴다.



(신선암봉의 유일한 사진)
일이 발생했다.
신선암봉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5미터 정도의 수직암벽 밧줄 아내는 성큼성큼 올라간다.
나는 기다리다 옆을 보니 우회 길이 보인다.
그리로 가본다 그 길도 만만치 않고 거리도 멀다 겨우 암봉에 오르니 여러 사람들이 머무르고 있는데 아내가 보이질 않는다.
아니 벌써 여기를 지나갔나?
사진도 한번 안 찍고 간 거야?
얼른 카메라를 꺼내 신선암봉 표지석을 찍으니 다른 팀의 일행이 화면에 나온다.
재빨리 카메라를 집어넣고 봉우리 너머로 내리 달리며 미야! 미야! 영미야! 하고 소리 쳐보니 대답이 없다.
내가 올라오느라 힘들어 많은 사람들 수풀에서 보지 못한 거야 !
다시 돌아와 사람들 사이에 아내를 샅샅이 살펴보나 없다.
배낭을 내려놓고 전화를 찾는다.
걸기 전 전화가 울리더니 끊어진다.
다시 전화를 거니 아내가 받는다.
“거기 어디야!” “ 어디긴 어디야 밧줄에 매달려 올라가지 못하고 꼼작 못하고 달려 있구만,,,,” 뭐라고 귀를 막 때린다.
아차차 뛰어가 보나 위에서는 어느 밑에 매달려 있는지 찾기도 쉽지 않다.
두어군데 내려다보니 아내가 밧줄에 매달려 올려 달라고 소리친다.
저번처럼 한발을 너무 올려놓고 밧줄을 잡아당기지 못하고 그냥 매달려 있다.
조금씩 발을 올려놓으려니 발 디딜 곳이 없단다.
올라가는 것 보지도 않고 어디 갔냐고 고함친다.
그새 남의 여자 따라 갔다고 다구 친다.
겨우 올려 진정 시키고 슬슬 쉬어 가자니 시간 없다며 바로 내닿는다.
여기서는 좌측으로 내려가면 신풍리 절골로 내려 갈 수는 있으나 그 길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힘들면 그만 하산하자고 아내에게 내려가는 길을 가르치니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바로 대간으로 길을 잡는다.
아내는 정말 애먹었는지 온갖 소리를 질러 댄다.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들려 창피 해 진다.
고함 그만치고 위험하니까 다시 집중해서 걸으라고 여러번 타이른다.
몇 곳의 밧줄에 매달리고 나서야 이제 진정이 좀 되는지 소리가 없다.
그래 내가 잘못이지 한구간한구간 올려놓고 내가 올라가고 그래야 되는데 아내의 밧줄타기를 눈여겨보지 않고 이탈 했으니 위험한 행동이다.
뭐라 말해도 할 말이 없다.
이제부터는 아내를 꼭 끼고 다니리라.


(바위위의 소나무 대단한 삶의 의지이다)
아내는 밧줄의 중심을 놓쳐 두어번 옆으로 바위에 구른다.
아마도 어딘가 멍이 들던지 긁혔지 싶다.
아내는 이 구간에 누가 밧줄이 40개라 하니 “누가 40개라 했나 50개는 넘겠다.”고 블로그에 올라 온 것을 읽었단다.
참 무수히도 많은 밧줄을 잡아야 되고 어느 릿지(redge)에는 지름 5센티 정도 되는 나무 두세개로 바위를 연결하여 이것 없으면 천 길 낭떠러지로 발이 허공에 떠야 하는 곳도 있다.
이곳이 오늘 산행 구간중 제일 위험한 곳으로 생각된다.
그래도 아내는 용감하게 잘 올라가고 내려간다.
비가 왔으면 정말 큰일날뻔 했다.
다행이도 하늘은 우리 편이다.
다음 바위 능선에서는 바람이 심하게 불어온다.
조금만 더 세게 불어온다면 몸의 중심을 잃을 수도 있겠다.
아내에게 자세를 낮추라 하고 조심조심 걷는다.
위험한 두구간에는 토요산악회 남자들이 암벽타기를 도와준다.
아내는 그 사람들 아니었으면 못 지나갈뻔 했다고 나는 못 믿겠단다.
그러기를 몇 차례 산세는 거의 꺾이고 있다.

주흘산을 바라본다


또 아래로 하산하면 신풍리로 가는 곳 까지 와서 지도를 본다.
아내는 내려가자며 나를 쳐다본다.
얼마나 더 험로가 있는지는 몰라도 경사도로보아 내려가는데도 상당한 시간과 어려움이 예상되어 나는 삼관문으로 가는 것이 좋을 걸로 본다며 그냥 전진하기를 권하니 아내는 그게 맞겠다며 동의한다.


이곳은 사람 하나가 겨우 지날 바위틈이 있다 이곳을 지나면 쉽게 전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이곳을 통과한다.
그러나 역시 배낭을 달아 올려야 될 만큼 녹록 치는 않은 코스다.

(깃대봉 갈림길에서 아내는 활짝 웃는다)



이제 경사도 원만해지니 아내는 한시름 놓고 이제 다왔다며 자기도 산을 볼 줄 알고 몸으로 느껴진다며 밧줄이 있으면 이제는 서비스 차원의 밧줄이라며 즐겁게 달라 든다.
시간 절약을 위해 연풍택시에 전화를 한다.
아침에 화장실을 이용한 그 가게에서 음악 소리가 들린다.
다 왔구나!
안도의 한숨을 쉰다.


(뭐가 보이는가? 아내는 무사히 인도해준 부처님이 보인다고 잠시 합장 한다)

삼관문에 도착하니 산에서 본 부부가 쉬고 있다가 우리를 보고 수고 했다며 인사를 건낸다.
정말 힘들었다며 화답하니 사진을 찍어 준다.
처음 계획 했던 하늘재 까지는 우리 실력으로 하루 등산은 무리다 로프 구간은 오르내리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하거니와 사람이 많을 때는 대기시간이 많아 자동적으로 지연된다.
등산자료의 시간보다는 2배는 할애해야 한다.

아내는 승리의 V 자를 그리며 환하게 웃는다.
그 맛에 산다.


연풍의 그 택시기사는 우리가 네 번째 이용하는데도 요금 천원도 할인해 주지 않는다.
인간미가 없다며 옛날의 추풍령택시의 작지만 물 한 병, 성삼재 택시의 마즙 한잔이 그립다.
아내는 다시는 이용하지 말자고 한다.
그래! 다음부터는 수안보 택시를 이용하니까 그만 불러도 된다며 입을 맞춘다.

오늘은 남아공 월드컵 예선전 우리나라와 그리스의 경기가 8시 30분부터 있다.
연수원에 들어와 방 배정을 받고 목욕 후 세탁기에 빨래를 넣어놓고 저번에 봐 두었던 원두막 식당으로 향한다.
아주머니와 딸이 텔레비전 연속극을 보고 있다.
축구는 시작 전이다.
정말 잘 요리된 저녁식사를 하고 반찬 솜씨에 감탄하며 먹는데 그 집 어머니와 딸이 맥주 한잔 하는걸 보니 갈증이 나 견딜 수 없다.
맥주 한 병을 시켜 목을 축이며 식사하는 중 축구가 시작 된다.
한골 넣는 것 보고 바로 올라와 연수원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응원장으로 가보니 사람들이 꽉 차 있었고 열기도 뜨거웠다.
마침 자리 하나가가 비어있어 않으니 뜨거운 응원 열기와 연수원에서 마련한 생맥주를 받아먹으니 저절로 흥이 났다.
식당에서 막걸리를 먹지 않기 잘 했다.
막걸리를 먹었으면 여기의 맥주를 못 먹는데...
아내가 자기의 예견이 뭘 안다며 즐거워한다.
우리나라는 후반전에 한골을 추가 하여 유럽의 강적 그리스를 2:0으로 제압한다.
이곳에 온 덕분에 월드컵 아주 신나게 즐긴다.
마침 “지점장님!” 하면서 뒤에서 부르기에 돌아보니 부산에서 근무하다 이곳으로 옮겨온 여직원이 반가운 얼굴로 명단보고 알았다며 인사한다.
안보이던 안주를 챙겨 오길래 고맙다며 아내에게 소개 시킨다.
안다는게 무섭다. 그리고 고맙다.
이여직원 이튿날 출발 할 때에도 나타나 음료수 두병과 껌을 주며 안전운행하시라고 인사 한다.
2주후 또 오겠다며 연수원을 떠난다.
오는 길 아내는 원장에게 선물이라며 문경의 그 가게에 들려 오미자 막걸리를 산다.


구내 매점에서 맥주 2병을 구입 오늘의 갈증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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