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은치재-이화령(희양산 직벽 힘들어요)

goldgate 2010. 5. 12. 14:16

 

 

 

 

2010.05.21-22산행계획

 

 

 

 

장소

특기사항

예정(분)

실소요(분)

시각

비고

은치

 

 

 

09:00

 

주치봉안부

 

 

45

09:45

 

구왕봉877

 

60

60

10:50

 

지름티재

 

30

45

11:35

점심

성터

 

50

120

13:30

희양산직벽

시루봉갈림

1차갈림길

40

60

14:30

 

용바위

 

30

 

 

 

이만봉989

 

20

60

15:30

 

곰틀봉

 

15

 

 

 

사다리재

 

20

50

16:20

중간끊음

 

21일소계

265

395

 

 

분지리

 

 

60

17:20

 

분지리

 

 

 

08:10

 

사다리재

 

 

75

09:25

 

981

 

60

 

 

 

평전치

 

30

80

10:45

 

백화산1063

 

40

60

11:45

점심

억새밭

황학산

30

85

13:10

 

억새밭777

 

60

60

14:10

 

 

조봉

 

 

14:15

 

681

 

40

 

 

 

이화령

 

20

60

15:15

 

 

22일소계

260

345

 

 

 

 

 

 

 

 

지난번 산행에 수안보생활관을 잘 이용하여 편안한 산행이 된 만큼 금년4월초파일이 3일 연휴라 또다시 대간행으로 결정 하고 5월21일22일(금,토) 이틀간 자율입소 대기자 명단에 올려놓고 기다려 보았으나 워낙 대기자가 많아(47명) 승인이 되지 않는다.

거기에다 혹시 수호 녀석의 휴가와 겹치지 않을까 걱정되어 15일 금정산 남문 코스로 평상시 산행을 마치고 16일 일요일은 날씨도 시원치 않을 것 같아 수호부대로 면회를 가기로 했다.

수호는 이제 군 생활이 몸에 익었는지 면회신청 후 면회실에 나타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지체 되었다.

면회는 생각지도 않은 모양이며 일요일이라 생활실에서 뒹굴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번 주말은 휴가가 없고 6월초에나 휴가가 있을 거라고 한다.

이제는 제법 상병 티가 나면서 휴가 날짜도 옛날 고등학교 다니면서 날짜에 개념 없이 생활 하던 때와 같이 정확한 날짜도 모른단다.

애고 세월이 모든 걸 해결 해 주네...

천안함 사건이후 영내 진입도 전과는 다르다며 법당에도 들어가길 꺼려해 면회실에서 계속 머물었다.

전 같았으면 면회종료 시간까지 잡고 있었는데 지도 할 일이 있다며 이번엔 일찍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은 차가 많이 막혀 두 시간은 족히 걸린다.

 

지인을 통하여도 21일 방은 도저히 승인되지 않는다며 22일 승인을 겨우 얻어내고 21일은 생활관에서 목욕하고 당일 사정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수안보 시내 모텔을 이용하기로 한다.

 

 

 

 

 

 

이번엔 지난번과 달리 4시15분기상 하고 5시경 출발한다.

2주전 보다 근 1시간 늦게 출발한다.

칠곡휴게소에서 아침과 점심을 해결하고 부리나케 은치마을로 향한다.

한번 온 길이라 집 찾기보다 쉽게 은치마을 주차장에 차를 댄다.

그 꼬마 주차 관리원이 쪼르르 쫒아 나와 주차비를 챙긴다.

그러나 그 아이는 또 인사가 없다.

아내가 저번에 만났을 때 인사 하라고 가르쳐 주었는데 왜 안하냐니 우리를 첨 본단다.

 

 

 

 

 

 

 

 

 

장비를 챙겨 2주전에 내려온 길을 더듬어 올라간다.

역시 은티산장에는 전화번호 하나 게시된게 없다, 도대체 영업을 할 의사가 있는 집인지 모르겠다며 아내와 나는 입을 맞춘다. 그렇지만 집은 한식으로 보기 좋게 지어져 있어 우리는 기록을 남긴다.

 

 

우로가면 은치재, 좌로가면 지름티재 이기 때문에 가운데로 잘 골라 가야하기에 지난번 기억을 더듬는다.

그사이 관광 산행버스 두세대가 도착 하여 산님들을 많이 풀어 놓는다.

입구 음식점 아주머니가 장사 준비 하며 우리에게

이리로 내려 올 거냐며 말을 건낸다.

"아니요" 하면서 개울 다리를 건너간다.

아마 우리가 이리로 하산 하면 한번 들르라고 권하려고 한 모양이다.

오늘은 사월초파일이고 연휴가 시작되는 첫날이니 이곳은 희양산과 그 자락의 봉암사가 유명 하므로 대간꾼이 아니더라도 일반 산행인이 많다.

 

 

 

 

한참을 가는데 산자락에 접어들기 전 우리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한부부가 길을 찾고 있다. 어디로 가느냐 물으니 은치재로 가야 한다고 한다.

잘은 모르지만 은치재는 이 골짜기가 아니고 우측으로 넘어 가야 한다고 하니

아내는 잘 모르면서 너무 깊이관여 한다며 우리 갈 길을 재촉한다.

그러나 어찌 되였든 간 그내들도 우리와 같은 길을 선택 하고 길을 걷는다.

그들은 대구에서 온 **산악회 대간 산행을 한다며 전에 빠진곳을 땜방 하러 왔다는데...

나중에 대간에 올라서 알았지만 역시 한 봉우리(주치봉)을 또 빼먹었단다.

내가 그렇다고 일러 주었건만.....

이부부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한 시간여 올라 대간(주치봉-구왕봉 사이 고개)에 접어든다.

 

 

 

 

 

 

구왕봉 까지 오르다 보면 은치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구부러진 나무가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 한다.

오늘 구간은 보통 사람등의 일일구간보다 절반으로 잡았기 때문에 산행속도를 올리지 않아도 충분하다.

벌써 희양산의 아름다운 바위가 희끗희끗 보인다, 저기보이는 산이 오늘 우리가 가야 할 산인가보다.

 

 

 

 

 

 

구왕봉은 잡목으로 싸여 있어 전망이 전혀 없다 그저 누군가가 만들어 설치한 구왕봉 푯말 뿐 .... 그 부부가 우리를 찍어 준다.

구왕봉 877m인가 887m인가 지도를 확인해 보니 877m가 맞다. 애써 만들어 가지고 올라왔으니 틀리든 말든 설치 한 것이리라.

무엇을 만들든 확인의 소중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한다.

 

 

 

지름티재로 내려 가다보면 희양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 있는데 여기서 그내들과 몇 장면 찍고 잠시 산을 바라본다.

과연 명산임에는 틀림없는 위용을 자랑한다.

저 아래 봉암사가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오늘 걸어야할 능선 저기가 이만봉인가?

 

 

 

내려가는 길은 가파르고 힘들어 아내의 속도가 무지 느려진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앞서간 대구에서 온 부부와는 다시 만나질 못한다.

 

 

 

여기가 지름티재 그러나 어느 한 곳에도 지름티재라는 표식이 없다.

다만 문경시에서 만든 목책 그리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움막 앞에 봉암사 주지의 출입금지 안내판만 요란하게 서 있다.

이곳은 성철스님등이 수도한곳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곳으로 오늘(사월 초파일)만 허락 한다고 일반적으로 안내 되어 있다.

이곳에는 오늘 스님이 근무 하지 않는 모양이다 바라봐도 인기척이 없다.

그렇다면 울타리 문이라도 열어 놓지... 굳이 닫아 놓을 필요가 있는지????

 

 

 

 

 

 

 

 

목책을 끼고 한참 오르다 보면 큰 바위가 있는데 사람하나 겨우 지날 틈이 있고 이리로 통과 하면 뒤로 돌아 이 바위 까지 올라 올 수 있으나 우리는 바로 산길을 따라 올라 이곳 큰바위 위에서 점심을 먹는다.

철쭉꽃 속에서 낭만이 깃든 점심이다.

산악회 무리들이 지나는지 등산인원이 갑자기 많아지고 산속이 시끄러워진다.

 

우리 밥 먹는 앞에 남자 둘이 배낭을 벗고 앉는다.

점심식사 하려나 생각 했는데 배낭에서 막걸리 한 병을 꺼내 먹는게 아닌가!

보기에도 시원한 막걸리 한잔 얻어먹었으면 원이 없으련만 그내들이 꼴깍 꼴깍 마시는 걸 침만 삼키며 바라본다.

아내도 맛있겠다며 부러워한다.

“다음에 막걸리 가져 오면 안 되겠제” ....

"안되, 내려가서 주차 시켜놓으면 얼마든지 먹을 건데“...

 

 

 

 

우리는 대간에 오를 때가 아니면 거의매주 금정산 남문에 오른다.

아내와 난 이미 특별한 휴일 행사가 없는 한 우리의 등산코스,, 집에서 부산대학교 교정을 거처 사범대 울타리 개구멍을 통과하여 보광암,,,, 제2망루 ...점심,,,,, 남문 ,,,케이블카.., 약수정사...금강공원,,, 온천장 천일탕 ,,,, 목욕,,,,온천천,,,,, 집...... 한숨 자는 것이 늘 일상화 되어 있어 지난주 까지 금년만 15회 산행을 했다.

여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부산의 막걸리 <생탁> 한 병이다.

미리 냉장고에 넣어놓았다 가져 갈 때도 있고 아니면 가는 도중 사서 배낭에 넣어 가져가는데 겨울이건 여름이건 그 맛은 천하일품이라 저들이 지금 먹고 있는 막걸리의 맛을 누구 보다 잘 안다..

그러나 대간에 오를때는 자동차 운전과, 큰 산의 알 수 없는 코스 때문에 술은 잘 가져가지 않는 편이다.

목구멍의 춤을 꼴깍 삼키며 오늘 저녁 내려가면 수안보 막걸리 다 먹을 기세다.

그런데 많이는 못 먹을 것 같다 내일 산행도 있고, 지난 19일(수) 침례병원에서 정밀건강 진단했는데 위내시경하다 조직을 떼어낸 것이 걱정된다.

아내에게 말 했다간 한모금도 못 먹을 것 같아 이제까지 말 안한 터이다.

그 내시경 하는 이 물어 보지도 않고... 못 떼게 할 건데...

그날 저녁 죽 먹고 달래고 이틀 정도 지냈으니 괜찮을 거야!!!

혼자 계산 다 한다.

 

 

 

 

 

아 이곳이 희양산 직벽 코스 거짓말 보태 100여미터 직벽 이다 지난번 대야산은 내려오는 코스였는데 이번엔 오른다.

아내에게 작대기를 배낭에 고정 시켜 주고 조심해 먼저 오르라고 뒤에서 쳐다본다.

사람이 많아 순서를 기다리고 또 오르고 힘은 들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별 문제 없으리라 생각 했는데 줄을 타고 오르던 아내가 왼발을 올려놓고는 줄을 잡은 채 몸이 올라가지 않는다.

힘 좀 써봐라 마음속으로 용을 쓰는데 버둥거리기만 하고 도대체 몸이 올라가지 않는 다.

뒤에 어떤 사람이 “다리가 긴데...” 한다.

그래 발은 올려놓고 몸이 올라가지 않으니 누가 안타가워 하는 소리다..

몇번 힘 써 보다 안되겠는지 아내가 뒷 남자에게 도움 청하는 것 같다.

뒷 남자가 엉덩이를 밀어 준다 그러자 쑥 올라간다.

됐다... 발을 너무 위에 올려놓으니 힘을 쓸 수가 없는 게다.

밧줄을 잡았으면 중간쯤 발을 딛어야 되는데 절벽이라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그리 된 거다.

 

 

 

 

 

 

 

 

 

 

마침내 아내는 한차례 더 도움을 받아 절벽위로 올라 가고 있다.

둘이만 간다면 내가 밀어 줄건데 사람이 이리 많으니 내가 다가설 수 없어 그 남자 남의 마누라 엉덩이를 손으로 밀고 있다..

애고!!! 마누라 엉덩이....

한사람씩 로프를 잡아야 하니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린다.

힘도 들고 위험하기도 하고...

겨울이라면 보조자일 없이는 안 되겠는데....

바위에 물도 질퍽하여 옷이 더럽혀 진다.

 

 

 

 

 

 

 

 

직벽을 지나 아내와 나는 편안히 앉아서 쉬면서 간식을 먹는다.

 

 

 

 

 

  처음엔 시간도 충분하니 희양산을 돌아오려고 했으나 직벽에 애먹은 터라 희양산 으로의 등산은 포기하고 바로 대간을 찾아 발길을 옮긴다.

 

 

(희양산성)

이 높은 곳에 산성을 쌓다니 무슨 목적으로 쌓아서 어떤 득을 보았는지 누가 발안을 하였는지 아무튼 지금에는 별 소용이 없는 역사가 그 당시에는 얼마나 절실하였기에 이렇게 힘든 공역을 하였을까? 조상들의 힘겨운 삶이 느껴진다.

 

 

 

 

 

 

 

 

 

이만봉으로 가는 코스는 평이하다.

도중에는 냇가도 옆으로 흐른다.

샘도 있다. 언제 부터인가 산속의 샘물을 가급적 먹지 않는다.

장염이 있고 난 후 부터다.

작년인가 장염으로 고열이 나 한밤중에 백병원 응급실 까지 간 기억이 있다

 

 

 

 

 

 

 

 

 

 

15세정도 아들 둘과 부부한팀이 이만봉에서 우리 사진을 찍어주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과 대간종주를 하는데 일년에 한두 번씩 몇 년 걸려 여기가지 왔는데 부인은 힘이 많이 들어 보이고 어른 둘다 다리에 무릎보호대를 한 것으로 보아 먼 길을 걸은 것으로 보여 물어보니 오늘 새벽 버리미기재에서 시작 했으며 야간산행까지 계획하여 이화령이 종점이란다.

아이들에게 일생에 한번 뿐인 경험을 쌓는 참 좋은 산행이지만 너무 무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해 본다.

나는 그들을 보지 못했는데 아내는 점심 먹을 때 이들이 지나가는 것을 본 모양이다.

 

 

 

 

 

 내일 걸어야 할  백화산  능선

 

 

 

 

이만봉을 넘어 사다라재에서 오늘 산행을 접는다.

 

 

 사다리재에서 분지리로 내려가는길

 

 

 

 

내일 가야 할 길

 

 

 

 

 

 

내려오는 길은 너덜지대와 급경사, 긴 코스 한시간정도 하산해 분지리 마을에 다다를 수 있어 내일 이리로 또 온다고 생각 하니 아득 하다 아내와 내일은 이화령에서 거꾸로 오는 것이 어떠냐며 의논 한다.

내일 일은 내일 결정 하자며,,

또 내려가서 잘 쉬면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여기서는 걱정을 더 이상 해봐야 아무 소용없다.

이런 상황 때문에 대부분 이리로 내려오지 않고 이화령까지 바로 가는것이다.

 

택시를 부를까 생각하다 혹시 분지리에 내려가면 편승할 수도 있기에 보류한다.

내려오니 분지골 특산품 판매장이라는 간판을 써 붙인 가게가 있는데 한 팀이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차를 얻어 타려고 말을 건네는데 그 집주인이 택시를 이용하라며 택시전화번호 적어 놓은 곳을 가르킨다.

그 사람은 태워줄 것도 같았는데 영 글렀다.

일전 이용한 연풍개인택시를 불러 은치마을 주차장으로 향한다.

 

 

 

 

 

연수원방은 없다.

차가 빼곡히 차 있는걸 보아 오늘 입소인원이 꽤 많은 것 같다.

차를 구내에는 주차할 곳이 없어 망설이니 관리팀장이 입구도로로 안내한다.

옆주차 하려니 엇비슷하게 대각선 주차하라하여 차를 대는데 인도경계석에 앞 범퍼가 툭 대인다.

아차차!!! 내려 확인하니 별 무리 없다 그러나 께름칙하다.

목욕을 마치고 나오니 아내는 전화온데 없냐고 묻는다.

온 일 없다고 하니 최종혁 집사람을 탕에서 만났는데 부부가 회사 여러 사람들과 모임이 있어 이곳에 왔단다.

그 친구 큰딸이 7월 10일 결혼 한단다.

서울에서 한다면 별일 없다면 참가해야 할 건데....

그녀석 회사에서 본부장도 하고 아이들 결혼식도 퇴직 전 마치고 부럽다.

우리아이들은 아마도 퇴직 전 결혼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하는데...

“전화 안올거야.” “지도 바쁜데 온다한들 만나지도 못하는데 뭘...”

 

아랫마을 몇 집을 돌다 낡은 호텔 노인분이 관리 하는 제일싼(삼만원)곳에 여장을 푼다.

내일 산행을 위해 아내는 다리를 아끼려고 배정된 이층 방을 마다하고 일층을 달란다.

단체손님을 위한 방이라 두 방을 턴 곳인데 둘이 자기엔 넓기가 운동장이다.

나는 창문을 살피니 2중문인데 다 떨어지고 홑창에 커튼을 치고 자야한다.

그리 춥거나 더운 날씨가 아니므로 별 문제 없으리라..

아내는 에어콘 안 나올까 걱정 한다. 동시에 보일러도...

나는 에어콘 틀일이 없으리란 생각을 하는데 아내는 오늘 뜨거운 햇볕에 몸이 몹시 달아 체온이 올라있는 모양이다.

저녁 먹고 들어와 조용히 누워 자면 별 문제없을 거라고 아내에게 안심시킨다.

내일 가지고갈 물과 음료수 병을 아이스케익 통에 넣고 얼린다.

 

이내는 지난번에는 몸이 가벼워 펄펄 날았는데 이번에 파워가 부족이라며 저녁은 든든히 먹어야 된다며 삼겹살로 정한다.

시내를 돌며 찾다 **숯불갈비집에 들어가 삼겹살 3인분과 검은콩막걸리가 시원한지 확인 후 시킨다.

갑자기 옆을 둘러보더니 2인분도 가능하다며 2인분으로 변경한다.

우리 동네에서는 2인분은 주문할 수 없는데...

연휴 첫날이라 식당은 붐빈다.

충분한 서비스는 기대 할 수 도 없다.

검은콩막걸리는 시원하긴 하나 별로 댕기지 않는다. 추가주문은 생략.

밥을 시켰는데도 들어올 생각을 안 한다.

삼겹살 2인분 시킨게 오늘 한 일중 제일 잘 했다.

다른 집으로 가자며 일어선다.

이집은 이제 올일 없는 것 같다.

다른 곳에서 저녁을 먹고 시내를 한 바퀴 돈 후 내일 아침 할 집을 확인 후 잠에 빠진다.

 

 

 

 

 

2010년 6월22일

입산지점까지는 30분정도 소요 되므로 게다가 수안보 아침식사 하는 집은 “원두막식당”으로 정했는데 7시부터 가능하다하여 천천히 일어나 준비한다.

6시40분경 산행준비를 마치고 식당으로 향하니 벌써 식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된장찌개와 순두부를 시켜먹고 밥 두 공기 추가하여 남은 찬으로 점심도시락을 싼다.

밥도 좋고 음식 맛도 괜찮아 아내는 다음부터 자주 이용할 대상으로 꼽는다. 어제저녁 삼겹살 먹던 식당 맞은편에 있다.

 

 

분지리마을로 들어서고 민가마당에 차를 주차시킨다.

이집은 거의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집처럼 보인다.

이화령으로의 역산행은 가치 없는 일이라 여기고 무엇보다 아내가 올라가는 것에 대한 수고로움 보다 내려오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으니 그저 힘든 사다리재를 올라갈 뿐이다.

 

 

 

 

 

 

아침부터 힘든 산행이 시작되나 아내는 오히려 이게 낫다며 오히려 나를 독려한다.

사다리재 까지는 한시간 이십여분 걸린다.

어제 하산시보다 20여분 추가 된걸 보니 역시 아내는 내려 오는길 보다 올라가는데 힘이 덜 소모된다.

 

 

 

 

백화산은 멀다. (계획 130분)

엷은 분홍색 철쭉이 이산의 특징이다.

2주전 산행 시에는 나뭇잎이 덜 자라 햇빛을 많이 받으며 걸었는데 어느새

앞이 활짝 피어 그늘산행이 되고 있다.

 

 

 

평전치로 보이는 곳에서 아침에 출발한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누가 유치 하지만 친절하게 이정표를 만들어 놓았다.

 

 

 

 

 

백화산으로 오르는 길엔 연리지(連理枝)가 있어 기록해 본다.

무슨 인연으로 이웃에 자라나 얼마나 서로 비볐길래 한 몸이 되었을까?

완전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연리지에는 틀림없다.

사람도 만나서 오래 살면 연리인이 되는가?

 

 

만날 싫다고 해놓고 산에 가면 따라나서는 내 아내는 이미 나와 같이 연리인이 된 건 아닐까?

아내와 함께 이 길을 다시 올 기회가 있을까?

길을 간다는 것은 뭘까?

그것도 같이 간다는 게 뭘까?

우리의 삶에 기록이나 되는 걸까?

 

 

친형제처럼 지내던 “최영철”을 지난 15일 저세상으로 보내고 월요일 화장장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회사에 출근하여 여느 때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일상을 보내고 그리 아파 죽을 지경인데도 아무것도 모르고 전화 한통 밖에 위로를 못하고 결국 저세상으로 보내고...

젊디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아들의 간까지 넣고도 못살고...

남은 사람들은 산 동안 만날 반갑다고 히히대고, 밤새워 같이 술 먹고, 골프치고, 외국여행도 같이 다니더니 죽고 나니 그가 기른 회사가 탐나는지 신경이 온통 회사 앞날에만 정신 팔려있고,,

이러니저러니 애고 불쌍해라.

간 사람은 갔지만 지 간 까지 떼어준 남은아이 어쩌나???

이렇게 펄펄 거리며 움직이다가도 숨 떨어지면 그만이고....

빨리 처리할 생각 뿐인데......

누구나 다 마찬가진데..

내가 가고 싶어 가는 백두대간도 지금이 좋은 것이지 지나고 나면 아련한 추억만 남을 테고...

누가 기억이나 해 줄까??

아내가...

아이들이.....

나를 아는 동료들이.....

 

그러나 난 오늘도 아내와 싱그러운 백두대간을 밟는다.

힘내라! 힘!

 

 

 

 

백화산은 몇 차례 봉우리를 넘은 다음 우리를 맞는다.

정상에는 은치마을에서 맞은편으로 올라온 젊은 사람과 잠시 머문다.

아내는 리본이야기를 한다.

국립공원은 산림이 훼손된다는 차원에서 리본을 철거 하는데 그 외 산행코스에서는 산행인의 길잡이가 되어주는데...

없으면 길 잘못 들기가 쉽상인데...

리본 철거하는 사람 좀 말려 주라고.... 그ㅡ젊은 산꾼도 동의한다.

나도 거든다 그게 산림을 훼손하면 얼마나 한다고...

 

 

 

황학산으로 가는 도중에 온통 속이 썩어 오묘한 형상을 한 나무를 만난다.

저 나무는 속이 저렇게 썩어 문더러 저야 할 이유가 있는가?

그러면서도 푸르른 싹을 틔우고 다른 나무와 전혀 손색이 없는 삶을 유지하고 있는데.... 아내는 또 뭐 닮았다고 한마디 한다.

 

 

 

 

 

 

 

 

연분홍철쭉이 핀 꽃밭위의 식사는 아침에 식당에서 담아온 모든 찬을 말끔히 먹어치운다.

어제 수안보 수퍼에서 산 사과는 저장기술의 발달로 먹을 만 했지만 우리 동네마트 물건보다는 못한 것 같다.

이 계절 까지 작년에 수확한 사과를 먹는다니 옛날 임금이 부럽지 않다.

 

 

 

황학산은 봉우리 전망도 없고 표지석 하나뿐이다.

 

 

 

은치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은 여러 군데 있다.

하기사 어제 오늘 은치마을을 중심으로 길쭉한 타원 모양의 대간길을 돌고 있으므로 어디로 내려가던지 은치마을 방향이다.

 

 

 

이화령의로의 길은 평탄 하다.

아내는 발에 부하가 걸린다며 양말을 갈아 신는다,

저아래 내려다 보이는 곳이 문경 새재 입구이고 문경에서 연풍으로 넘어가는 국도와 고속도로...

아내에게 설명하니 건성으로 그러냐고 대답한다.

작년 12월 부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수안보연수원에 왔을 때 도자기체험 하던 곳이라 일러 주었으나 눈길이 찾지 못하는 기색이다.

자세히 보니 문경새재 공원으로 관광버스가 수도 없이 올라가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대간에 웬 연못이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조그마한 섬에 나무가 자란다.

마치 인공적으로 조성한 연못 같다.

들어다보니 올챙이가 무수히 노닌다.

이작은 연못을 생명의 터로 잡고 언제 부터인가 몇 대로 내려오는 거룩한 생명들이여....

앞으로 수천년 수만년 융성 할 지어다..

 

 

 

 

 

 

 

 

 

 

지도에는 억새밭으로 안내되어 있는데 몇 고개를 넘어 보아도 보이지 않다가 헬기장 있는 곳에서 작년의 마른 억새 줄기를 발견하고 아내는 반가워 사진을 찍으라한다.

 

 

 

 

 

 

조봉(鳥峰)은 조그마한 봉우리에 조그마한 뾰쪽한 표지석이 있다.

아내는 장난기가 발동하여 엉덩이를 대고 사진을 찍으란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의문점이 풀린다.

길옆의 멧돼지 흔적이 너무 많아 정말 이게 전부 동물의 흔적 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정말이라면 온통 버리머기재에서 여기까지 길 가장자리를 헤집어지지 않은 곳이 없는데 도대체 이산에는 멧돼지가 몇 마리나 산단 말인가?

짐승이라면 왜 하필 길가장자리만 뒤집어 놓은 걸까?

겨우내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뒤집어 진건 아닐까?

지난주 까지만 해도 이것이 원인이라고 거의 확정한 상태 이었으나

아무래도 의문점이 풀리지 않아 계속해서 관찰하고 있던 차

조봉 주위에서 “전사자 유해 발굴 완료” 라는 조그마한 표지 하나를 발견 하고 멧돼지의 공포로부터 해방되고 아내에게도 설명하여 주니 아내도 전부 멧돼지 흔적이 아닌데...

인위적인 흔적이라고 생각한 자기 예감이 맞아 떨어 졌다고 자기 말이 맞다고 내가 틀렸다고 나보고 도로 뭐라 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국방의 요충지임엔 틀림없다.

능선 곳곳에 호가 파져있고 심지어 교통호까지 파져 있으며 콘크리트 구조물개인호와 돌로 쌓아 만든 참호도 보인다.

어제 본 희양산성은 신라시대부터 북으로 부터의 침입에 대비하던 곳이고 임진왜란, 625전쟁 등 다수의 전투에 이곳이 지형적으로 방어선이 되곤 했을 것이다.

그러니 참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뼈를 묻었다고 생각되어지며 수많은 영혼들이 그들만의 아픔을 간직한 채 조직이라는 거대한 덩어리 속에서 산화해 갔다고 생각하니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가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도 그 처절했던 삶의 몸부림이 능선에 울려 퍼지는 것 같다.

 

 

 

 

 

그 처절한 몸부림을 기억하는지 형상이 아주 험상궂은 노송 한 그루가 버티고 서있다.

자세히 보면 온갖 형상의 귀신이 다 붙어 있을 것 같은 소나무이다.

 

 

여기서 부터는 마을 야산처럼 부드러운 길이다 자동차가 다녀도 될 길로 보인다.

마지막 봉우리엔 남녀가 한가로이 쉬고 있다.

나는 또 소설을 쓴다.

그들이 부부가 아니라고...

데이트 중이라고....

이들은 우리가 이화령에 도착하여 사진을 찍을 때 뒤따라와 고급승용차에 오른다.

자세히 보니 부부사이가 맞는 것 같다..

모르겠다. 괜히 남을 모략 했다는 후회가 든다.

 

 

 

 

이화령 마지막 길은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아내의 말을 빌리면 “사과 깎기 모양”으로 허리를 둘러 차츰 고도를 낮춘다.

아내는 이런 길을 제일 무서워하는데 대간산행 때문에 이제는 익숙해 져 있다.

그래... 길 아래 비탈에서는 부부로 보이는 한 쌍이 나물을 뜯고 있는 비탈을 예전엔 걷기조차 무서워하더니 이제는 길 모양이 제대로 보이는지 사과 깎기 길이란다.

 

 

 

 

이화령 휴게소 예전에 모든 차들이 이리로 넘었건만 터널이 뚫리고는 너무나 한가한 휴게소가 되어 있다.

산행인 가끔씩 찾는 관광객이 고작이다.

꼭 언양-밀양간의 석남재와 같은 꼴이다.

여기서 아내는 장모님의 가르침이 생각난단다.

어려운 장사집들...

뭐라도 하나 팔아 주어야 된다는 가르침...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많이도 참아준 오늘비가 이제야 내리는 하늘의 고마움을 느끼며 연풍의 택시기사를 기다린다.

 

 

 

 

 

 

 

 

 

 

이화령 휴게소에서 연풍쪽으로 바라본 전경..

 

 

 

연수원에 도착한 우리는 재빨리 목욕한 후 식권을 얻어 식사를 마치고 세탁기를 돌려놓고 휴식을 취한다.

비오는 밤 그냥 보내기 싫어서 아내를 슬슬 구슬려 시내로 내려간다.

역시나 한 바퀴 쭉 돌아봐도 뾰쪽 한 수 없이 지난번에 들렸던 막걸리와 빈대떡을 파는 삼거리 그 식당에서 빈대떡과 막걸리를 먹는다.

지난번 보다 맛이 덜하다.

밖에는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왠 남자 둘이 빈대떡 사러와 여자들 보다 더 주인아주머니 앞에서 수다를 떤다....

 

 

 

연수원에 돌아와 노래방 빈곳이 있어 우리는 모처럼 한곡 뽑는다.

아내도 신이나 노래 부른다.

카메라를 가져와 동영상으로도 찍어본다.

아내는 한쪽어께 옷자락을 늘어뜨리고 폼 잡는다.

오늘밤 아내는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한다.

 

 

 

 

 

 

 

 

 

 

 

이튿날 우리는 시간이 되면 봉암사로 들르기로 했으나 비도 내리고 갈 길도 부담이 되어 예전에도 여러번 간적이 있는 인근의 미륵사지를 둘러본다.

 

 

 

투박한 거북돌과 전혀 비율이 맞지 않는 미륵 부처님 예전처럼 그렇게 모셔져 있고 사월초파일 공양된 난들이 그 앞에 드리워져 있다.

갓에 보호된 부처님 얼굴은 맑고 뽀얗게 옛 그대로이고 아마도 또다시 천년을 그런 모습으로 우리의 앞길을 인도 하시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