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소령
세석평전을 지나 칠선봉으로 향할 즈음 벌써 시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카메라의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회사생활 금년 5월 27일 이면 33년 얼마나 틀에 박힌 점심시간인지 배가 먼저 안다.
계획은 벽소령에서 먹으려 했으나 2시간여 차질이 나고 있으니 적당한 곳을 찾으면 먹기로 하고 여기저기 살피며 걷는다.
지리산은 등산길에서 10보정도 떨어진 후미진 곳에 앉을라치면 예외 없이 그곳이 화장실이다. 그넘의 똥파리가 왱-- 하고! 화장지 몇 장이 나딩굴고 있지.. 두세곳 살펴보았으나 허사였다.
이윽고 칠선봉에 다다르고 "칠선봉 1558 m " 이정표 밑이 그럴사해 보인다. 아내에게 그기에 배낭을 놓으라하고 나도 바위위에 깨어져 물려있는 바위를 배경으로 나란히 앉았다. 남은 두개의 주먹밥 그리고 쇠고기 장조림, 참치캔을 뜯었다.
무릎보호대를 푸니 바지와 보호대는 땀에 흥건히 젖어 있었다.
날씨가 이내 추워지기 시작 한다 땀이 다 식었고 밥도 차게 느껴진다.
등산객 한 팀이 아래쪽 길에 머뭇거린다. 아마 우리가 이곳을 점령하고 있으니 사진을 찍어야 될지 말지 머뭇거리는 것 같다. 비켜줄 힘과 여유도 없어 모르는 척 하며 식사를 하고 있으니 자기들도 아래 바위에서 식사를 시작하는 것 같다.
찬밥은 잘 넘어가지 않는다. 평소 라면은 거저 줘도 잘 안 먹는데 아침에 장터목에서 먹은 라면의 뜨근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아내는 주먹밥을 다 먹지 못하고 남긴다. 나도 남긴다....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일어선다.
아내는 벽소령 까지 머냐고 묻는다. 약4키로 남았으니 두어시간 더 가야 할 거라고 말 하니 아내는 그냥 그렇게 말하지 말고 어떻게 해서 그렇게 계산이 나오냐고 따지고 ane는다.
아내는 숫자에 약하다. 말하다가 숫자만 나오면 사고가 엉키는 모양 이다. 산에서는 1키로당 약 30분씩 걷는다. 그러므로 약 두 시간 걸릴 거라고 말 하고나니 요즘 각산마다 500미터간격으로 세운 조난 위치 획인 푯말이 눈에 띠어 번호 하나 줄이는데 500미터니까 30분씩 걸린다고 이야기 해주었으나 잘 알아들었는지 의문이다. 지리산 에는 이 푯말이 눈에 잘 띠게 세워져 있어 그야말로 산길의 고속도로 같았고 이후부터는 이 푯말의 번호를 확인 하면서 걸어온 길을 알 수 있어 아내는 연신 푯말을 확인한다.
노고단에서 시작한 이 푯말은 천왕봉이 52번이다. 중간 중간 적어 놓지 않아 기억은 못하지만 길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아 안심이다.
덕평봉을 넘을 때부터 아내는 무척 힘들어 보인다. 괜히 백두대간을 하자하여 이렇게 골병 들인다며 투덜투덜하면서 저만치 앞에 간다.
산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안녕 하세요" " 수고 많습니다.""반갑습니다." "어디서 오세요?" " 어디가 얼마 남았어요?" 등의 인사를 주고받는다. 아내는 답변도 힘들다면서 안했으면 좋겠단다. 내혼자라도 할께 하니 그러란다.
다리가 아프긴 나도 마찬가지다.
무릎보호대와 스틱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것 같다. 왼쪽 새끼발가락에는 물집이 생기는 것 같다 걸음이 부자연스럽다, 아니 오른쪽엄지 1마디 제일 압력이 많이 가해지는 곳도 그리 편치 못하다.
아내가 이번 산행을 위하여 태평양제약<아모레 퍼시픽>에서 구입한 것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러그젤"이라는 다리에 바르는 젤이고 하나는 대용식인 8888 이다.
이즘에서 오른쪽 무릎근육에서 쥐가 나서 몇 발자국 참으며 걸었으나 더욱 아파와 아내에게 소리치며 쉬어가자고 했다. 아내는 러그젤을 오른쪽 무릎에 몇 번 고루 발라 준다. 느낌이 시원하다.
그렇다 새벽 3시반 에서부터 점심 먹을 때 까지 제대로 앉아 보질 못했지 않았는가?
젤을 바르고 조금 쉬니 쥐가 풀리는 것 같다.
러그젤을 잘 산 것 같다. 아내는 한방약이 들어간 좋은 약이라 하며 잘 골랐다고 기분 좋아 한다. 전에도 몇 번 발라 보았지만 효과가 괜찮은 최신 약 이다. 아내는 우리만 좋은 약을 빨리 접한 것 같아 만족 해 하였으나 어제저녁 로타리산장에서 남여대학생팀이 이것을 가지고 여학생 다리에 발라 주는 것을 봤다고 아내에게 이야기 하자 요즘 젊은이들은 우리생각 이상 이라 하며 말한다. 우리의 생활이 다른 사람들에 비하여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라 느껴진다고 하니 아내도 동감이다.
대용식인 8888도 먹었다 맛도 괜찮고 무게도 있어 보여 다른 먹거리가 필요 없을 것 같다.과일 향기도 나고 곡물류 여러 가지가 함유되어 아주 잘 만들어 진 것 같다.
구비를 돌자 벽소령 저 멀리서 반긴다. 뙈약볕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다. 아내는 점심 먹은후 벽소령에서 커피를 끓여 먹자고 했다. 빨리 벽소령 산장에 도착 하면 커피를 끓일텐데...
큰 바위를 돌아서려니 좌우로 길이 나있는데 오른쪽 위 바위모퉁이에 한사람이 앉아서 쉬고 있다. 왼쪽으로 갈까 하다 사람 있는 쪽으로 발길을 잡는데 웬 여자가 뒤에서 어느 쪽으로 가냐고 묻는다. 나는 잘 모르면서 아무 쪽으로 가도 만날 것 같다고 했으나 그 일행은 우리 뒤를 따른다. 바위를 돌아보니 왼쪽길은 통행로가 아니었다. 아내는 나에게 한방 놓는다. 잘 모르면서 그저 아는 체 한다고!
모퉁이를 돌아서니 임도가 나타나며 옛벽소령 대피소라는 푯말이 보인다. 여기서부터 폐도가된 차길이다 평평하여 걷기는 좋았지만 좀체로 벽소령 대피소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때 웬 여자 등산객이 뒤에서 큰소리로 "안녕 하세요"를 연신 외친다. 많은 등산객과 교차한다. 그런데 너무 큰소리로 자꾸만 소리치니 짜증이 난다.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왼쪽 새끼발가락은 물집이 생긴 것이 완연하다. 아내는 벌써 멀어져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더 걸어 벽소령산장에 도착 한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린다. 아내를 찾았다. 물은 뒤쪽에 있었다. 배낭을 놓고 버너와 코펠을 꺼냈다. 맨 밑에 넣었기 때문에 내용물 전부가 쏟아져 나온다.
아내는 저쪽탁자에 않아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버너를 조립하고 물을 떠다 올리고 불을 켜니 바람이 세어 이내 꺼진다. 안 된다 버너 연결 파이프까지 불이 붙는다. 황급히 끄고 실내 취사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물의양은 얼마 되지 않았으나 오래 걸려 끓는다.
아내는 커피를 나는 인삼차를 탄다. 그러던 사이 아내는 화장실에 다녀온다.
여기서 잤으면 좋으련만.... 예약된 연하천 까지는 3.6km 아직도 2시간은 더 가야 한다. 산장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금일 산장은 예약이 완료 되었으니 혹시나 하여 머무르거나 미련을 갖지 말고 다른 길을 찾으라고.... 울타리 넘어 왔다 같다 하는 사람은 빨리 나가라고....
그래 내일 일찍 집에 도착 하려면 한 구간 더 가는 것 도 좋다고 생각 하니 어느덧 햇살은 열기를 잃어 가는 것 같아 갈 길을 재촉 할 수밖에 없었다.
배낭을 둘러매고 다시 아내를 앞세워 연하천으로 향한다...